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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은 그냥 재미로 보기에도 좋은 영화지만 우리에게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단순히 감독의 상상력이 아니라 과학에 기반해서 정말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거나 과거로 돌아가는 게 가능한지 말이죠.
영화의 기반에는 나름의 과학적 근거가 있고 짤막한 설명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테넷은 관객에게 다소 난해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 정말 그냥 느끼기만 한 채로 영화관을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해 과학이론을 약간만 알고 있다면 테넷을 더 재밌게 즐길 수도 있습니다. 이제 테넷에 나온 과학 이론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이론은 엔트로피와 맥스웰의 악마입니다. 두 종류의 향수가 각각 다른 방에 갇혀있다고 해봅시다. 방 사이에 있는 문을 열면 향수 분자는 다른 방으로 확산하고 최종적으로 균형이 이루어집니다.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 법칙 때문입니다. 여기서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정도로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외부의 개입이 없을 때 무질서가 질서로 바뀌는 현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깨진 유리잔은 다시 붙지 않고, 미지근한 물은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로 다시 나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방은 점점 어질러집니다. 방을 깔끔하게 정리하려면 에너지를 투입해 일을 해야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주는 점점 무질서하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엔트로피를 무질서로 해석하는 것은 불운한 천재였던 루트비히 볼츠만의 공식에 근거합니다. 이처럼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작용해야 하므로 만약 유리컵의 이동을 찍은 비디오를 거꾸로 재생한다면 우린 즉각 이상함을 느낄 것입니다. 무질서에서 질서로 이동하는 현상은 에너지의 외부 투입 없이는 관찰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결국 우리는 시간을 엔트로피의 증가로 느끼는 셈입니다.
하지만 충분히 오랜 시간이 지나면 두 종류의 향수 분자가 우연히 다시 나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이것은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과 동일한 효과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존재하지만 매우 낮은 확률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이제 맥스웰의 악마, 또는 맥스웰의 도깨비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향수 분자가 섞여있는 방의 문 가운데에서 분자의 흐름을 통제하는 악마가 있다면 어떨까요? 맥스웰의 도깨비는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맥스웰의 악마와 엔트로피의 역전을 알고 있다면 영화의 초반 장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중반 부분부터는 반입자와 쌍소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반입자를 완벽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과학자인 폴 디랙은 전자의 반입자, 즉 전자와 질량이 같으면서 전하는 반대인 양전자를 1931년에 예견하였고 바로 다음 해인 1932년에 칼 앤더슨이 양전자를 발견합니다. 실제로 최초의 반입자가 발견된 것이죠.
전자와 양전자가 서로 만나면 쌍소멸이라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자와 양전자가 사라지고 고에너지를 가진 광자 즉, 감마선이 방출됩니다. 감마선은 방사선 중에서 투과력이 가장 강합니다. 현재는 광자 두 개를 충돌시키는 정반대의 과정으로 양전자를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으며 자기장 안에서 몇 주동안 보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현대 물리학이 밝혀낸 바로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는 자신의 반입자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반입자는 시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CPT 정리 때문입니다. 양자장 이론에는 CPT 정리라 불리는 매우 유명한 정리가 있습니다. 알파벳 각각에는 의미가 있고, 입자를 반입자로 바꾸는 변환은 소위 C로 불립니다. 그리고 마치 거울처럼 공간을 반전시키는 변환은 P로 불립니다. 마지막으로 T는 시간을 거꾸로 되짚는 변환입니다. 세 가지 변환 모두 테넷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CPT 정리는 모든 물리적 상호작용에 C, P, T 변환을 동시에 가한다면 물리적 원칙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이것은 재밌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어떤 입자가 반입자로 바뀌는 C 변환은 PT 변환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입자의 반입자는 해당 입자의 시간과 공간을 반전시킨 입자로 간주됩니다. 따라서 테넷의 INVERSION 기술은 엔트로피를 역전시키는 맥스웰의 악마, 또는 입자를 반입자로 바꾸는 기술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반전성은 테넷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시간이라 인식하는 세계 전체의 열역학적 엔트로피가 역전된다면 우리의 뇌는 이러한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화살이 최소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열역학적 화살이고, 두 번째는 과거를 기억하는 심리적 화살이며, 세 번째는 빅뱅이라는 우주론적 화살입니다. 스티븐 호킹은 엔트로피의 화살과 심리적 화살은 같은 방향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엔트로피의 화살이 거꾸로 흘러간다면 우리의 심리적 화살 또한 거꾸로 흘러가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는 심리적 화살에서, 미래를 기억하는 정반대의 심리적 화살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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